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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18 17:53:05 ȸ  2143
      조선일보에서 장편으로 연재된 한국의 명산 | 완도 청산도] 슬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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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박하며 일출·노을보기 섬산행 | 완도 청산도] 슬로길 탐승 & 보적산~고성산~대선산~대봉산 종주산행

노을 속 자그마한 돌섬들, 장난치는 돌고래 무리인 듯
 

완도 청산도(靑山島)-. 하늘 높이 솟구친 산도, 섬을 둘러싼 바다도, 섬을 감싸안은 하늘마저도 푸르다는 남해의 섬이다. 해안 절벽과 갯돌해안이 번갈아 나타나며 이어지는 해안선과 민가의 경계로 비롯되었지만 정겨운 돌담길, 특이한 장례문화인 초분(草墳) 등 오랜 세월 이어져온 문화유산은 섬 밖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특함을 자랑한다. 게다가 봄이면 온 섬이 보리로 파릇해지고 곳곳이 유채꽃 노란빛으로 채색되면서 한층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섬이다.


▲ 칠흑같은 어둠이 밀려 오기 전 바다는 황홀경을 연출한다. 범바위 비박지에서 바라본 남해 낙조.
 

그래서일까. 완도는 어획량이 줄어들고 인구가 줄어들며 잊혀져가는 섬이었으나 1981년 12월 23일 남해의 298개 섬과 함께 다도해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2007년에는 홍도와 함께 ‘가고 싶은 섬’ 4곳 중 하나로 꼽히고, 이어 오래도록 훼손되지 않은 자연문화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슬로시티(Slowcity·Cittaslow)로 지정되었다.


‘서편제’ 주인공들이 진도아리랑 노랫가락에 덩실덩실 춤추며 걷던 황톳길

대모도, 소모도, 여서도, 장도 등 4개의 유인도와 9개 무인도의 부속도서로 구성된 청산도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삼치와 고등어 파시(波市)로 인해 완도에서도 이름난 어항이었다.

“요즘은 강산이 2년에 한 번 변해요. 10여년 전 얘긴 꺼내지도 말아요. 그런데 가고 싶은 섬, 슬로시티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요?”

완도 연안여객선 터미널에서 첫 배를 타고 청산도 관문 도청항에 도착해 관광자료를 얻기 위해 찾은 청산면사무소에서 만난 청산도 슬로시티 사무장 김송기(金松基)씨에게 기자가 11년 전 기억을 더듬으며 청산도에 대해 아는 척하려 하자 썰렁한 반응을 보내왔다. 청산도는 높은 빌딩이 들어선 것도 아닌데 예전에 비해 뭔가 많이 변했다 싶었다. 무엇보다 여객선에서 대형 화물차나 중장비 차들이 내리는 광경 때문이었다. 게다가 예전과 달리 섬 안의 길은 황톳길 대신 대부분 아스콘이나 콘크리트로 깨끗하게 포장돼 있었다.

“일단 차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요. 그러고 범바위까지 슬로(slow)길을 걸어보기로 하죠.” 


▲ 1 평화로운 풍광의 청산도 갯마을. 2 돌담길이 인상적인 동촌마을. 슬로길은 진행방향이 화살표로 표시돼 있다. 3 해풍을 맞아 오히려 자연미가 넘치는 해송들. 4 ‘서편제’ 촬영 무대인 당리마을 초가집.
 

당리를 향해 아스팔트길을 따라 언덕마루를 올라서는 사이 오른쪽으로 멋진 도락리 포구가 눈길을 끈다. 포구 안에는 자그마한 어선도 떠 있고, 김·전복양식장이 바다를 예쁘게 장식하고 있다.

“한때 고등어와 삼치가 많이 나 파시가 열렸던 섬이에요. 인구도 1만3000명이나 됐고요. 지금은 2300명에 불과해요. 인구가 줄어든 원인은 무엇보다 교육 때문이에요. 중학교가 하나밖에 없어요. 의료시설도 빈약하고….”

김송기씨의 맏아들 역시 올해 대학에 입학해 서울에서 학교를 다녀야 한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둘째이자 외동딸 역시 내년에 고등학교를 다니려면 뭍이나 적어도 완도읍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해온다며 한숨을 쉰다.

“서편제는 아실 테고, 봄의 왈츠도 알죠? 있잖아요, TV 드라마.”

당리 마을이 바라보이는 언덕에 올라서자 오른쪽 콘크리트길 뒤편에 그림 같은 이층집이 올라앉아 있다. 2006년 방영된 TV 드라마 ‘봄의 왈츠’에서 주인공 남녀가 사랑을 나누던 무대였다. 아스팔트길을 버리고 콘크리트길을 따르는 사이 오른쪽으로 도락리 포구가 나타난다. 포구 뒤로 납다도, 두억도, 지초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를 떠다니는 배처럼 바라보이고, 해남땅과 다리로 이어진 완도와 역시 완도와 다리로 이어진 신지도가 부연 바다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갯돌 해안과 금빛바다 풍광이 인상적인 장기미해변.
 

“밭을 푸르게 물들인 게 마늘대지만 그래도 봄 분위기가 나는 것 같네요.”

이층집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르는 사이 영화 ‘서편제’의 한 장면이 떠오르며 마음이 싸아해진다. 지금은 콘크리트로 포장돼 있지만 이 길은 주인공 유봉과 의붓딸 송화가 진도아리랑의 구성진 노랫가락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내려오던, 돌담이 가지런히 쌓인 황톳길이었다. 그때는 길 양쪽에 보리가 파랗게 피어올라 싱그러운 봄 분위기가 풍겼지만 지금은 제법 차가운 바람에 어깨가 움츠러든다.

‘봄의 왈츠’ 세트장을 지나 화랑포새끝으로 향하는 사이 우거진 숲이 바다 조망을 가로막는다. 그래도 좋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 그대로 우거진 숲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혀 주고, 숲이 벗겨지면서 드러나는 화랑포(花浪浦)는 파도가 칠 때면 마치 꽃을 보는 듯 아름답다는 포구답게 예쁘게 느껴진다.


해안 절벽과 몽돌밭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슬로길

화랑포 지명 유래와 슬로길에 대해 김송기씨의 설명을 들은 다음 새땅끝으로 향한다. 해남 땅끝에서 이름을 따온 ‘새땅끝’ 가는 길은 전구간이 ‘남해 조망대’였다. 동으로 기암 범바위(239.8m)와 그 뒤로 보적산(330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바닷가 산의 아기자기함과 내륙에 솟아오른 육산의 웅장함을 함께 갖추고 있고, 남으로 여서도 외에는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한낮의 햇살은 바다를 자극하면서 수많은 고기가 튀어오르는 듯 반짝였다. 비늘처럼 반짝이는 파도는 갯바위에 부딪치는 순간 “철썩~” 하며 소리내곤 부서져 다시 푸른 바닷물로 변했다.

“날이 맑으면 추자도는 물론 제주도까지도 보여요. 겨울철엔 한라산이 푸른 바다에서 솟구친 설산처럼 신비롭고요.”

새땅끝을 바라보다 다시 당리를 향해 가는 사이 중년 여인들이 둘, 셋 짝을 이루어 다가온다. 옷깃 사이로 찬바람이 파고드는데도 즐겁기만 한 표정이다. 청산도 슬로길은 제주 올레길만큼 도시인들이 몰려들지는 않더라도 이미 천천히 걷는 여행의 즐거움을 아는 이들에게는 이름난 길로 자리잡은 듯싶었다.

“오후엔 오늘 야영할 범바위에서 이쪽으로 걸어오기로 하죠. 길이 자연스럽고 해안 풍광이 정말 기가 막힙니다.”


[비박하며 일출·노을보기 섬산행 | 완도 청산도] 슬로길 탐승 & 보적산~고성산~대선산~대봉산 종주산행

노을 속 자그마한 돌섬들, 장난치는 돌고래 무리인 듯
 

권덕리 해변으로 이어지는 슬로길 갈림목에서 ‘봄의 왈츠’ 세트장을 지나 아스팔트길을 따라 당리로 내려서자 김송기씨는 골목길을 따라 허름한 초가집으로 들어선다. 이곳 역시 유봉과 송화가 머물던 서편제의 무대다. 툇마루에는 송화가 아비이자 고수인 유봉의 장구 장단에 맞춰 노래를 배우는 모습을 한 인형이 자리잡고 있고, 부엌과 변소 역시 옛 모습 그대로였다. 집 뒤편 골목길은 제주의 돌담길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쉬워요. 센서를 이용해 누가 접근하면 진도아리랑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게 하고 또 이런 곳에서 창 한 자락 가르쳐줄 수 있다면 외부인들에게 진정한 청산도 여행을 즐길 수 있게 할 텐테 말입니다.”


▲ 1 당리마을 도로변에 있는 읍리 지석묘. 2 아직도 청산도에 남아 있는 초분.
 

도로가의 읍리 지석묘(支石墓)와 하마비(下馬碑)를 지나 신흥리 바닷가로 다가서자 김송기씨는 해안을 따라 소나무 숲이 조성된 신흥해수욕장을 스쳐지나 동촌리 동촌마을로 안내한다. 시멘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허리 높이로 쌓아올린 마을 돌담길은 전형적인 고향 가는 길처럼 정감이 넘쳤다. 널찍한 마당에 텃밭까지 갖춘 민가에서는 행주치마 두른 어머니가 당장이라도 뛰어나올 것만 같았다. 길바닥에 파란 페인트로 표시된 화살표 방향을 따르는 사이 들려오는 닭울음소리는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동촌 마을을 지나 순환도로를 따라 몽돌 깔린 진산리 해안과 멸치로 이름난 국화리 포구에 이어 해안가 소나무 숲과 백사장이 일품인 지리해수욕장을 거쳐 다시 도청항에 닿자 오후 1시. 서둘러야 화랑포 부근의 잘루목에서 슬로길을 따르면서 해안 절경지를 탐승한 뒤 범바위에서 야영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자장면으로 점심을 후딱 해결하고 다시 봄의 왈츠 촬영장을 지나 권덕리로 이어지는 슬로길로 접어들었다.

“야~, 이거 정말 기가 막히네. 속초 앞바다와 전혀 다른 풍광이야.”

속초에서 살고 있는 노영수씨는 동해와 달리 해안 절벽과 기암이 다채로운 청산도 해안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거친 바윗길에서는 18km나 떨어져 있는 여서도가 전설 속의 섬 파랑도처럼 바라보여 가슴 설레게 하고, 숲길로 들어서자 판타지 영화 속 마술의 숲 같은 분위기에 묘한 즐거움에 빠진다. 그러다 구장마을 갯돌 해안을 따르노라면 갯돌 부딪치는 소리가 어린아이 웃음소리처럼 느껴져 정겹고, 갯바위 아래에서 나는 법 배우느라 하늘로 솟아오르다 툭 툭 떨어지는 갈매기들을 바라보노라면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맴돈다.


 
 

또다시 해안 절벽 위로 이어지는 슬로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서자 갯바위 낚시터로 이름난 권덕리 마을. 11년 전 우연히 들어선 집에서 뜻하지 않게 싱싱한 회에 정 넘치는 소주를 얻어 마신 기억이 있던 터라 ‘혹시’ 싶은 기대에 골목 어귀에서 두리번거려보았지만 움직이는 이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제 가파른 산길을 10여 분 오르면 범바위 안부예요. 맑은 날에는 추자도도 보이고 제주도 한라산도 보여요. 한데 이렇게 찬바람이 불어대는데 잘 수 있겠어요?”


‘전설의 기암’ 범바위에서 환상적인 일몰 만끽

김송기씨의 걱정소리를 들으며 가파른 사면을 따라 닦인 슬로길을 따라 오르는 사이 등뒤로 화랑포새끝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이 아름답게 바라보이고, 여서도는 수면에 떠오른 커다란 고래가 점점 먼 바다로 나가는 형국이다.


▲ 동촌마을 돌담길. 가옥과 가옥의 경계로 쌓은 돌담이 골목 길을 형성하고 있다.
 

“어휴, 추워. 이런 날 비박이 가능하겠어요? 바람 피할 만한 곳도 마땅치 않은데….”

“나는 범바위에서 밤하늘 보면서 비박할 거야. 텐트에서 잘 사람은 알아서들 쳐. 낭만이 없어, 낭만이.”

범바위와 전망대 사이의 안부는 널찍하지만 전망대 조성 공사 자재가 어지러이 널려 있어 텐트를 치기에는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텐트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도 노영수씨와 최준회, 이영석씨는 “범바위에 올라 비박하는 게 훨씬 낭만적이다”라며 범바위로 올라간다.

청산도에 살던 호랑이가 자신이 울부짓는 소리가 범바위에 부딪치면서 더욱 크게 울려 퍼지자 더 크고 힘센 호랑이가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겁을 집어먹고 섬 밖으로 내뺐다는 전설이 전하는 범바위는 멋진 조망대다. 여서도가 외롭게 솟은 망망대해가 끝없이 펼쳐지고 좌우로 청산도 남쪽의 아름다운 해안이 샅샅이 들어왔다.


 
 

날씨가 어두워지면서 서녘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기암 사이로 바라보이는 바다는 호수 같고, 해는 그 호수를 향해 서서히 내려앉았다. 바다는 한낮의 푸르고 밝은 빛 대신 칙칙한 빛깔로 변하다 어느 순간 해를 꼴깍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칠흑같은 어둠이 순식간에 덮쳐오고, 발아래 권덕리와 바다 멀리 여서도 갯마을의 민가도 한 집 한 집 불을 밝혀왔다. 어둠은 청산도는 물론 온 세상을 묻어버리는 듯했지만 밤하늘을 빼곡이 수놓은 수많은 별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별이 좋긴 한데…. 어휴, 추워. 이거 바람이 장난이 아닌데.”

“아니, 비박이 그렇게도 좋다더니 왜들 이래? 그깟 추위도 못 참는 거야?”

범바위에서 비박하던 세 사람은 추위와 강한 바람에 잠 못 이루다 자정을 넘기지도 못하고 한 명 한 명 텐트 안으로 들어오더니 결국 새벽 1시쯤에는 텐트 안은 몸을 움직이는 게 어려울 정도로 비좁아지고 말았다.

“오메, 징한 거. 왜 그렇게 산다요?”


노을 속 자그마한 돌섬들, 장난치는 돌고래 무리인 듯

 

산사면의 잡목을 베어내기 위해 해가 뜨기도 전에 범바위 주변으로 올라온 마을주민들은 텐트 안에 누워 있는 일행을 보더니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뭐가 그리도 좋은지 우리는 빙그레 웃음지으며 물을 끓이고 라면을 풍덩 집어넣으며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기대했던 일출은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보덕산(寶德山·330m)으로 향했다. 등뒤로 아침해가 바다에 금빛 꼬리를 늘어뜨린 채 꼼짝하지 않을 듯하더니 몇 발짝 걷다 뒤돌아서자 하늘 높이 솟아올라 있었다. 범바위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왼쪽에 툭 튀어오른 새끼 범이 어미 범을 좇아가는 형국이었다. 범 가족도 발아래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슬로길을 걸어 보고픈 것일까.

널찍하고 부드러운 능선길을 따르노라니 풀내음과 바다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찬바람이 얼굴뿐 아니라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듯하다. 이래서 청산도를 일컬어 하늘과 땅, 바다가 푸른 섬이라 하는가 보다.


▲ 1 보적산 북릉. 2 대선산 남릉상의 기암. 3 고성산 산성길.
 

망대 같은 보적산(寶積山·330m) 정상에 올라서자 고성산(310m)에서 대선산(311.1m)과 대성산(343.4m)을 거쳐 대봉산(大鳳山·379m)으로 이어지며 섬의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가 섬 북쪽을 가로막은 채 기운차게 솟아올라 있고, 동쪽으로 청산도 최고봉 매봉산(384.5m)이 암팡진 형상으로 솟아 있다. 그보다 더욱 마음에 와닿는 것은 역시 바다 건너의 육지와 남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였다. 어제는 뭍의 바닷가에 있다는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섬산을 오른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고성산 가는 길은 오른쪽으로 어제 느림보 걸음으로 둘러보았던 돌담마을과 그 주변의 구들장논이 내려다보이면서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 마치 고향집 찾아 내려가는 기분이다. 그러다 급경사 내리막을 지나 숲 우거진 능선길로 접어들자 강원도 깊은 산으로 들어서는 착각에 빠진다. 간간이 동백나무가 보이자 이영석씨는 ‘동백아가씨’ 노래를 불러대고, 분위기는 한껏 흥겨워진다.

섬 동서횡단도로가 가로지른 읍리큰재(권덕리마을 4.3km, 말탄바위 3.7km, 범바위 3km, 보적산 1.9km)로 내려섰다가 고성산으로 향한다. 10여 분 뒤 올라선 고성산은 남해의 중요한 봉수대(烽燧臺)였다.

봉수대에 올라서자 대성산~대봉산 능선은 한층 가까워오고 그 뒤로 고금도가 언뜻 보이는가 하면 오른쪽으로 생일도와 금일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뒤돌아서자 우리가 지나온 보덕산은 만만찮은 기세다. 왼쪽 매봉산과 함께 쌍봉을 이루며 남해를 지키고 있는 형상이었다.


▲ 1 화랑포에서 해안을 따라 권덕마을로 이어지는 슬로길. 2 범바위 안부에 설치한 텐트 안에서 취사 중인 취재팀. 3 권덕마을에서 범바위로 오르고 있다. 뒤로 화랑포 일원이 바라보인다.
 

부드럽기만 하던 능선에 기암이 툭 튀어나와 있다. 바위 턱을 잡아당기며 단숨에 바위 위에 올라서자 더 멋진 조망이 눈에 들어왔다. 구들장논 위에 자리잡은 청계리, 해가 잘 드는 양지리, 돌담길이 정겨운 동촌리, 바닷가 소나무숲이 아름다운 신흥리 등 산기슭에서 바닷가에 이르기까지 옹기종기 자리잡은 마을들이 죄 눈에 들어온다. 상사포 앞바다의 전복양식장도 예서는 그림 속의 비경이었다.

조망바위를 내려서자 또다시 숲길이다. 빼곡하게 숲을 이룬 여정실나무는 쥐똥만 한 열매를 잔뜩 매단 채 푸르름을 자랑하고, 그러다 숲이 벗겨지면 사철나무가 띠를 이룬 듯한 돌담길이 정겹게 맞아준다. 산길을 물들인 푸른빛만으로도 봄이 오는 듯 가슴이 설레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대선산 갈림목(대선산 0.2km, 고성산 0.5km, 보적산 2.8km)에서 진행방향과 반대쪽이지만 그래도 도청항 쪽 조망을 기대하며 대선산 정상으로 향했으나 아쉽게도 무성한 숲이 그 기회를 주지 않는다. 가볍게 간식을 먹은 뒤 대선산으로 향한다. 숲 우거진, 널찍한 산길에 새소리까지 들려오니 섬이 아닌 내륙의 깊은 산을 오르는 듯하고, 그러다 된비알을 올려쳐 대성산 등마루에 서자 남으로 보적산과 매봉산 그리고 그 산봉 사이로 펼쳐지는 남해는 수묵화와 같은 몽환적 풍경을 자아낸다.

어제 춥던 날씨가 풀리면서 해무가 피어올라 조망이 탁해지는 게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따스한 봄기운이 느껴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새 머리처럼 빤빤한 대봉산 정상은 청산도 최고의 조망대였다. 섬 안의 산봉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그 뒤로 청산도 주변의 섬들이 바라보인다. 동으로 자그마한 돌섬들이 장난치는 돌고래 떼처럼 느껴지고, 서로 대모도와 소모도에 이어 소안도, 보길도, 노화도가 커다란 고래 떼를 보는 듯하다. 이어 매봉산과 보적산은 먼 바다로 나간 아비의 배를 기다리는 형제처럼 측은하면서도 다정히 바라보였다. 청산도가 ‘山’자를 이름삼은 것은 이렇듯 여러 산봉이 섬 곳곳에 솟아 있기 때문이리라.


“아직 바람이 찬데 벌써 봄 따러 온 거예요?”

“배도 안 고픈가 보지, 나야 뭐 백련암에서 점심 공양하고 왔으니까 맘대로 해. 더 가도 좋고.”


▲ 1 고적산 남릉을 오르노라면 등 뒤로 범바위와 일망무제의 남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2 읍리고개로 내려서는 취재팀. 3 보적산 정상. 등 뒤로 대봉산이 바라보인다.
 

고성산 정상에서 헤어져 읍리큰재에 세워놓은 차를 몰고 백련암을 거쳐 대봉산에 오른 노영수씨는 남해의 섬 풍광에 흠뻑 빠진 듯 하루 더 머물고 싶은 표정이다. 어느 쪽으로 갈까 망설이며 사방을 둘러보자 북쪽 354.8m봉이 “어서 이리 오라” 불러대는 듯하고, 동쪽으로 오산(333.5m)도 눈길을 놔주지 않으려 한다. 순풍 대신 찬바람이 분다. 그만 욕심을 내란 자연의 뜻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오후 1시30분, 오후 4시 완도행 마지막 배를 타려면 서둘러야 할 시각이다.

노영수씨가 걸어왔다는 산길을 따라 백련암으로 내려서자 비구니와 공양주 두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따뜻한 차 한 잔씩을 건네준 뒤 “아직 바람이 찬데 봄 따러 왔냐?”며 반겨주었다. 그 아래 동백숲에는 꽃봉오리가 하나하나 맺혀가고 있었다.

[섬 여행 길잡이] 영화 촬영명소~해안 절경지~돌담 마을 잇는 슬로길


▲ 범바위 북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청산도 남쪽 해안 풍경.
 

399개 유·무인도로 구성된 다도해국립공원에 속하는 청산도는 해안과 마을을 잇는 슬로길이 개발 중이다. 현재 섬 중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도로와 북쪽 해안을 따르는 순환도로가 콘크리트길로 닦여 있고, 주도로를 벗어나 있는 마을들은 대부분 아스팔트길로 이어져 있다. 도청항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면 섬 곳곳의 마을을 방문할 수 있다.

청산도 슬로시티가 주축이 돼 닦은 슬로길은 영화 ‘서편제’와 TV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 명소인 당리에서 남쪽 화랑포새끝(새땅끝)으로 이어지는 해안길과 권덕리~장기미해안을 잇고, 이어 돌을 깔고 흙을 덮어 만든 구들장논, 돌담을 둘러쌓은 상서 마을과 동촌 마을로 이어진다. 꼭 이 길이 아니더라도 아스팔트길을 따르다 눈에 띄는 마을로 접어들면 예스럽고 자연스런 농촌 풍광을 엿볼 수 있다. 당리~화랑포새끝~권덕리~장기미해안~청계리 구들장논~상서리 혹은 동촌리 돌담 마을로 이어지는 트레킹은 쉬엄쉬엄 걸으면 5~6시간 걸린다.

넉넉한 일정으로 청산도에 들어설 경우 갯바위 낚시도 즐겨볼 만하다. 장도, 지초도, 항도 등 섬 가까이의 유·무인도뿐 아니라 새땅끝, 권덕리, 장기미, 국화리 일원의 바닷가에는 명당자리로 꼽히는 낚시터가 여러 곳 있다.

여행 안내 문의 다도해국립공원 청산도 분소 061-553-4474, 청산도 슬로시티 김송기 사무장 011-624-5035,
hanbada@lycos.co.kr, 청산면사무소 061-550-5608.

[관광명소] 장보고기념관·청해진유적지 & 세트장

완도를 찾았다면 통일신라 때 해로 요충지였던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해 해적을 소탕하고, 당나라와 일본은 물론 남중국해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해상의 질서를 주도하며 왕성한 해상무역활동을 펼쳤던 해상왕 장보고의 유적지와 드라마 세트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완도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13·77번 국도를 따르노라면 드라마 ‘해신’세트장과 기념관 및 청해진 유적지를 관람할 수 있다.


▲ 1 다리로 이어진 청해진 유적지. 2 장보고기념관.
 

입장료 △장보고기념관(www.changpogomh.go.kr·하절기 개관시각 09:00~18:00·매주 월요일 휴무)=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 △불목리 신라방 세트장(매주 월요일 휴관·관람시각 하절기 09:00~18:00)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문의 061-550-5745 △대신리 청해포구 세트장(연중무휴·09:00~18:00)= 어른 5,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 문의 061-555-4500.

[미니인터뷰] 슬로시티 청산도위원회 김송기 사무장


 
 

“꾸며지지 않은 섬 청산도는 선산(仙山), 선원(仙源)이라 불렸으며 하늘, 산, 바다가 모두 푸르고 자연경관이 유달리 아름다워 청산여수(靑山麗水)라고도 불리던 섬입니다. 그래서 1981년 12월 23일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데에 이어 옛 조상들의 문화와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음을 인정받아 2007년 12월 1일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되었습니다.”

슬로시티(Slowcity)란 1999년 이탈리아의 몇몇 시장들이 달콤한 인생의 미래를 걱정해 만든 민간인 주도의 범지구적 운동을 말한다. 공식명칭 치타슬로(Cittaslow)의 출발은 ‘느리게 먹기 + 느리게 살기’로 로고 역시 그에 어울리게 마을을 지고 가는 느림의 상징 달팽이다. 현재 16개국, 111개 도시가 슬로시티로 지정돼 있다. 슬로시티로 선정되면 이내 관광명소로 전 세계에 알려진다.

우리나라는 현재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슬로시티를 배출한 국가다. 2007년 12월 전남 신안군, 전남 담양군, 전남 장흥군, 전남 완도군이 슬로시티로 지정됐고, 2009년 1월 경남 하동군이 슬로시티 대열에 합류했다.

슬로시티 청산도위원회 김송기 사무장은 “청산도는 우리나라 영화사상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던 영화 서편제를 비롯, 윤석호 감독의 사계절시리즈 중 ‘봄의 왈츠’, 특별기획드라마 ‘해신’ 등의 드라마를 촬영할 만큼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라며 “인위적으로 개발되지 않은 청산도의 자연을 가슴으로 느끼고 담아가면 훗날 좋은 추억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청산도 여행 문의 011-624-5035,
hanbadada@lycos.co.kr.

[산행 길잡이] 4시간 거리의 우보 산행 코스


▲ 권덕마을에서 해안선을 따르는 슬로길은 화랑포로 이어진다. 화랑포 구간 분기점.
 

한신골~세석대피소~삼신봉~청산도의 산군은 동서관통도로에 의해 대선산~대성산~대봉산 줄기, 보적산, 매봉산 3개 산군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산행도 대개 3개 산군으로 나누어 시도한다.

가장 인기있는 코스는 면소재지에 위치한 청산중학교에서 대선산으로 올라붙은 다음 대성산과 대봉산을 잇고 백련암으로 내려서거나 또는 계속 동쪽으로 진행해 오산을 거쳐 신흥리 해안도로로 내려서는 것이다. 3시간 소요. 최고봉인 매봉산 산행은 동촌리에서 북단의 능선자락으로 올라붙은 다음 능선을 타고 정상에 올라선 다음 상동리 상서마을이나 원동 마을로 내려선다.

취재팀이 답사한 범바위~보적산~고성산~대선산~대성산~대봉산 코스는 보적산에서 고성산으로 가려면 읍리큰재 도로를 가로질러야 하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섬 중앙을 휘감는 산줄기를 따르며 섬 곳곳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있는 코스다. 백련암에서 마무리지을 수도 있지만 계속 동쪽으로 진행하면 바닷가에서 신흥리 산행을 끝낼 수 있다. 4시간 정도 잡으면 조망을 즐기면서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도중에 샘이 없으므로 식수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산행을 마친 다음 완도로 가기 위해 도청항으로 가려면 노선버스는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산행 종점인 신흥리 해안일 경우 1시간30분, 읍리고개의 경우 1시간 이상 여유를 갖고 하산하도록 해야 배를 놓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청산도 내의 산들은 대부분 정상부가 터져 있어 일출과 일몰을 한 곳에서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섬 중앙 남부에 위치한 보적산 일원은 일출과 일몰을 맞기에 적격인 곳이다. 하지만 바람을 피할 만한 바위나 숲이 없다는 게 아쉬운 점이다. 취재팀은 범바위와 전망대 사이 안부에 텐트를 치고, 일부는 범바위에 올라 비박을 하고 일부는 낙조를 감상한 다음 텐트에서 하룻밤 묵었다.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권덕리가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읍리고개와 청산초교 동분교 사이의 섬 관통도로에서 남쪽으로 뻗은 마을도로와 임도를 따라 안부에서 약 200m 떨어진 주차장까지 차량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산행에 필요한 식수와 먹을거리는 여객선터미널이 위치한 읍내의 마트에서 준비하도록 한다. 터미널 부근의 해산물 공판장에서 싱싱한 생선과 어패류를 저렴한 값에 구할 수 있다.

청산도는 다도해국립공원에 속하지만 봄철건조기 산불예방기간과 관계없이 산행이 가능하다.

교통

서울→완도 강남고속 호남선에서 08:20, 10:00, 16:10, 17:40 출발하는 금호고속 우등버스 이용. 5시간40분, 3만3400원. 인터넷 예약 www.easyticket.co.kr, ARS 02-2088-2635.

광주→완도 유스퀘어 종합터미널에서 40분~1시간 간격(05:20~20:20) 운행하는 직행·직통버스 이용. 2시간40분~3시간, 1만4400원. ARS 062-360-8114

목포→완도 공용버스정류장에서 1일 7회(07:55~17:45) 운행. 2시간, 1만500원. 1544-6886.

부산→완도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일 5회(07:10~16:20) 운행. 6시간40분, 2만8,300원. SRS 051-322-8301~2.

완도→청산도 연안여객선 터미널에서 08:10, 11:20, 14:30, 17:10 출항. 청산도발 완도행 출항 시각은 06:50, 09:50, 13:00, 16:00. 45분, 왕복 1만3,550원. 승용차 왕복 4만8,400원(운전자 1인 포함). 3월 21일부터 완도발 시각은 08:00, 11:20, 14:30, 18:00, 청산도발 시각은 06:30, 09:50, 13:0, 16:50로 바뀐다. 문의 ARS 연안여객선 터미널061-552-0116 / 청산농협 061-552-9388.

섬 안에서 셔틀버스가 입항시각에 맞춰 운행한다. 섬 관통도로와 순환도로를 따라 운행하며 요금은 1,300원 안팎이다. 청산버스 061-552-8546, 청산나드리 마을버스 061-552-8747, 청산개인택시 061-552-8747, 청산택시 552-8519, 2시간 관광에 5만 원선.

자가용을 배에 싣고 청산도에 들어섰다가 빠져나올 때에는 출항 시각 1시간 전쯤 항구에 닿도록 한다. 간혹 배를 실을 공간이 없어 다음 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 1 당재 부근의 능선마루에 지어진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 2 도청항 어시장에서 해삼을 다듬고 있는 주민.
 

숙박(지역번호 061)

△도청리=경일장모텔 554-8672, 동양장모텔 552-8639, 등대모텔 552-8558 △권덕리=권덕리민박 552-8820, 낚시인의 집 554-8018, 범바위낚시 554-0162 △신흥리=산새민박 552-9111, 상산포 552-4802, 신흥 552-8580 △진산리=갯돌 552-9030, 낙원 554-7161, 사계절펜션 554-5122 △지리=갯마을민박 552-9065, 청산 552-8800, 한바다민박 061-554-5035, minparkzip.com.ne.kr)

맛집

청산도의 식당들은 거의 다 도청항 일대에 밀집돼 있다. 생선회를 비롯, 백반, 중국음식 등 메뉴도 다양하다. 갯돌식당 552-9030, 경일식당 552-8517. 여객선 매표소 옆의 어시장에서는 저렴한 값에 청산도산 전복과 해삼 외에 싱싱한 생선회를 맛볼 수 있다. 완도 여객선터미널 부근의 활어해산물장터은 청산도에 비해 규모가 훨씬 더 크고, 어종도 다양한 어시장으로 완도군민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있는 곳이다.


/ 글 한필석 차장
pshan@chosun.com 
 사진 정정현 부장
rockar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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